청파의 인생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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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황소’ 연작, 단순해 질수록 선명해지는 본질 1945년 겨울, 피카소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발로리스(Valauris)에서 머물며 '리튬판화(lithography)'라는 인쇄 기법을 실험하고 있었습니다.이때 그는 파리의 유명한 인쇄소 ‘무르(Mourlot Studio)’에서 인쇄 기술자 페르낭 무르로(Fernand Mourlot)와 함께 작업하며 새로운 창작 방법과 표현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죠.‘황소 연작’은 리튬판화 기술로 제작된 11점의 실험작입니다.그림을 수정하고 다시 인쇄하며 ‘단계별로 변화하는 이미지’를 관찰할 수 있는 리튬판화의 특성이, 피카소의 실험 정신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피카소는 평생 ‘형태’와 ‘본질’ 사이의 관계에 집착했습니다.그는 황소라는 익숙한 동물의 형상을 통해, “형태를 얼마나 단순화할 수 있는가?”, “단순화해도 그.. 2025. 5. 18.
영화 「승부」 리뷰 - 조훈현 vs 이창호, 바둑으로 본 승부의 철학 조훈현과 이창호. 한국 바둑 역사에서 ‘승부’라는 단어를 가장 치열하게 체현한 두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승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조훈현은 불꽃처럼, 이창호는 바위처럼 싸웠다.조훈현은 말했다."물러서지 마. 바둑의 본질은 전투, 공격이야."그에게 바둑은 전쟁이었다. 적당히 타협하며 집이나 짓는 것은 바둑이 아니라 했다. 물고 뜯고 덤비며 싸우는 것, 그것이 바둑이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박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바둑판은 검이 오가는 전장이고, 거기서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진짜 승부라고 그는 믿었다. 이 철학은 조훈현의 바둑뿐 아니라 인생에도 깊이 배어 있었다.이에 비해 이창호는 말한다."저기에 두면 만의 하나 역전당할 위험성이 있고, 여기에 두면 백이면 백 제가 반집.. 2025. 5. 11.
유시민, 『청춘의 독서』 리뷰 - 생각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독서 여행 『청춘의 독서』는 작가가 인생의 여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점에,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참고해온 '위대한 책들'과 그 책들의 저자들을 다시 되새기고, 그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고자 하는 성찰의 글이다. 이 책은 단순한 독서 기록이 아니라, 저자가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던 지성의 유산들을 되짚고, 그것을 딸에게 전해주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인간은 문명과 지성의 역사 속에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삶의 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 삶은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총 15장(2025, 증보판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한 권의 책과 그것이 담고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저자의 개인적 경험, 사회적 맥락, 철학적 질문을 엮어 풀어낸다. 독자에게 특정한 .. 2025. 5. 4.
14명의 대법관으로 모든 상고심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다른 국가들은? 대한민국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단 1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중 법원행정처장 1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한 대법관 1명은 행정 또는 외부 업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는 약 12명의 대법관이 재판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헌법과 법률은 대법원이 모든 상고 사건을 직접 심리하고 판결하는 3심제의 최종 단계로 기능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사실상 대부분의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광범위한 심리 범위와 재판 부담에 비해 대법관 수는 지나치게 적다. 이는 영미법계 국가뿐 아니라 유사한 법체계를 가진 대륙법계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이례적이며, 제도 설계의 비효율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1. 영미법계 국가: ‘선택적 심리제.. 2025. 5. 2.
제시 리버모어 『주식 매매하는 법』 리뷰 『주식 매매하는 법』은 주식 시장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모든 투자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려는 욕심보다, 자신의 감정과 자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이 책은 직관적인 책 제목 그대로 "주식 매매하는 법"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본질적이고도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제시 리버모어는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를 합쳐놓은 듯한,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 트레이더로 평가받는다. 그는 열다섯 살에 주식 거래를 시작해 파산과 재기를 반복하며 막대한 부를 일군 선구자였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감정 통제, 시장에 대한 겸손한 자세로 주식시장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었고, 시장에서 실패를 통해 스스로 배우며 투자 전략을 확립했다. 《주식 매매하는 법》은 그의 철학을.. 2025. 4. 29.
영화 속 장면을 통해 보는 콘클라베 전 과정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스러운 의식, 콘클라베(Conclave).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전통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 안에서, 신의 뜻을 따르려는 인간들의 고민과 선택으로 이루어진다.2024년에 공개된 영화 「콘클라베」는 이 비밀스러운 과정을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장엄한 의식, 숨 막히는 심리전,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까지, 영화는 콘클라베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장면을 따라가면서, 콘클라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나씩 정리해보려고 한다. 교황 사망 확인은 궁무처장이 하게 되며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성직자단의 대표, 교황의 비서, 사도단의 단장 등 만 80세 미만의 고위 성직자가 입회하여 진행한다. 궁무처장은 교황이 생전에 지명해 둔 추기경이며, 교황 부재 .. 2025. 4. 28.
광장에 모인 다양성, 민주주의를 지켜내다 밤하늘을 가르는 깃발들이 춤춘다.저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 다른 문장을 품은 깃발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큰 물결이 되어 광장을 채웠다.그곳은 강요된 질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다양성의 물결이었다.공자는 말했다."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군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반면 소인은 겉으로만 같아 보이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 되지 못한다.이 광장은 군자의 길을 택했다.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어떤 이는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고, 어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손을 들었다.또 어떤 이는 지역의 이름을, 또 다른 이는 개인의 신념을 깃발에 담아 흔들었다.하지만 모두가 같은 꿈을 꿨다.민주주의.. 2025. 4. 27.
[논어]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 "군자는 화이부동, 소인은 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이 말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어록을 엮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입니다.이 문장은 중국 춘추시대(기원전 6세기경) 위대한 사상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입니다.《논어》 '자로(子路)' 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당시 사회는 귀족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한 시대였기 때문에, 공자는 인간 관계와 공동체 조화의 원칙을 강조했습니다.문장을 하나하나 풀어보면 이렇습니다.군자(君子):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바른 사람 (이상적 인간상)화(和): 조화를 이루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어울리다부동(不同): 무조건 똑같아지지 않는다소인(小人): 속이 좁고 자기 이익만 따지는 사람동(同): 무리하게 같아지려 한다불화(不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조화를 이루.. 2025. 4. 27.
[법률 상식] 3심제란? 항소·항고 차이부터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한눈에 정리! 대한민국의 사법제도,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요?우리나라의 재판 제도는 3심제도라는 이름으로 최대 3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3심제의 구조, 항소와 항고의 차이, 그리고 대법원 상고심에서 소부와 전원합의체의 차이까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드립니다. 3심제란 무엇인가요?3심제는 한 사건에 대해 최대 세 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입니다.이는 재판의 공정성 확보와 오판 방지를 위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구분심급관할 법원특징1심제1심지방법원, 가정법원사실과 법률 모두 판단2심항소심고등법원1심 재판을 전면 재검토3심상고심대법원법률 해석 중심, 사실 판단은 하지 않음 항소와 항고, 무엇이 다를까요?항소: 1심 판결에 불복하여 2심 법원(고등법원)에 이의를 .. 2025. 4. 25.
『거래의 신, 혼마』 리뷰 - 250년 전 투자 고수의 통찰 우리는 오늘도 주식차트를 들여다본다. 빨간 양봉과 파란 음봉이 반복되는 그 익숙한 ‘캔들차트’. 이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이 방식이 170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다.그 시작은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바로 일본 에도시대의 전설적인 쌀 선물 거래자, 혼마 무네히사.시대를 움직인 거래자, 혼마 무네히사그는 쌀을 거래하던 중, 시장의 움직임이 단순히 공급과 수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가격의 변화에는 분명 ‘사람들의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최초의 캔들차트를 고안해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봉차트의 시초다.『거래의 신, 혼마』는 그런 혼마 무네히사의 통찰을 정리한 책.. 2025. 4. 23.
1년 전 사둔 만년필을 꺼내며 서랍 정리를 하던 중, 1년 전에 샀던 만년필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움보다는 약간의 부끄러움이 먼저 밀려왔다. ‘그래, 또 그랬지…’늘 그렇듯 시작은 거창했지만,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작년 이맘때쯤, 손글씨를 잘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찾아왔다. 깔끔하고 정갈한 글씨를 보면 어쩐지 마음도 정돈되는 것 같았고, 나도 그런 글씨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에 손글씨 관련 영상을 검색하다가, 만년필로 책을 필사하는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종이 위를 사각사각 흐르는 펜촉, 잉크의 깊이감, 느릿한 필기의 리듬… 그 영상 하나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그리고 예상대로, 관심은 금세 연장으로 옮겨갔다. 저가형 입문용 만년필을 하나 구입하고는, ‘이게 끝이겠지’ 했던 나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양한 펜.. 2025. 4. 23.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제5장 적용 자유의 원칙과 국가 권한의 정당한 범위밀은 자유의 원칙이 현실 정치와 제도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제5장에서 다룬다. 그는 모든 개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전제하며, 이 원칙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법과 정책에 반영되어야 할지를 설명한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야 하며,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도덕적 규제의 위선과 위험밀은 특히 사회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선택과 생활방식에 간섭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타인의 동의 없이 강제된 도덕은 위선적이며 억압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 개성의 발현과 사회의 진보를 방해한다고 본다. 사회적 비난이나 명분 없는 .. 2025.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