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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노트

영화 「승부」 리뷰 - 조훈현 vs 이창호, 바둑으로 본 승부의 철학

by 청파 2025. 5. 11.

조훈현과 이창호. 한국 바둑 역사에서 ‘승부’라는 단어를 가장 치열하게 체현한 두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승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조훈현은 불꽃처럼, 이창호는 바위처럼 싸웠다.
영화 「승부」 스틸컷

 

조훈현과 이창호. 한국 바둑 역사에서 ‘승부’라는 단어를 가장 치열하게 체현한 두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승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조훈현은 불꽃처럼, 이창호는 바위처럼 싸웠다.

조훈현은 말했다.

"물러서지 마. 바둑의 본질은 전투, 공격이야."

그에게 바둑은 전쟁이었다. 적당히 타협하며 집이나 짓는 것은 바둑이 아니라 했다. 물고 뜯고 덤비며 싸우는 것, 그것이 바둑이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박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바둑판은 검이 오가는 전장이고, 거기서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진짜 승부라고 그는 믿었다. 이 철학은 조훈현의 바둑뿐 아니라 인생에도 깊이 배어 있었다.

이에 비해 이창호는 말한다.

"저기에 두면 만의 하나 역전당할 위험성이 있고, 여기에 두면 백이면 백 제가 반집은 이깁니다."

그의 세계엔 확률이 있었고, 냉정함이 있었고, 무엇보다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적을 무너뜨리기보단 끝까지 밀리지 않고 이기는 법을 택했다. 겉보기엔 유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칼보다 더 단단한 승부의식이 있었다. '반집승'은 타협이 아니라 계산된 지배였다. 백판 중 백판을 이길 수 있는 자리, 그는 그런 수를 둔다.

이 대비는 단순히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이길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승부에 임할 것인가’를 묻는 두 태도다. 조훈현은 싸워서 이기려 했고, 이창호는 지지 않음으로써 이기려 했다. 전자는 감정과 기세를 무기로 삼았고, 후자는 침묵과 확률을 무기로 삼았다. 하나는 전장에서 앞장서는 장군 같고, 다른 하나는 뒷산에서 전세를 지켜보는 전략가 같다.

그렇다면 승부란 무엇인가?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없는 세계다. 싸움은 치열하되, 그 싸움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건 끝까지 버텨내는 것, 그리고 자기만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창호가 조훈현을 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조훈현이 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훈현이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신과 다른 방식의 승부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승부의 세계에 정답은 없다. 다만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내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답을 향해 한 수 한 수를 내딛는 것, 그것이 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