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겨울, 피카소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발로리스(Valauris)에서 머물며 '리튬판화(lithography)'라는 인쇄 기법을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파리의 유명한 인쇄소 ‘무르(Mourlot Studio)’에서 인쇄 기술자 페르낭 무르로(Fernand Mourlot)와 함께 작업하며 새로운 창작 방법과 표현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죠.
‘황소 연작’은 리튬판화 기술로 제작된 11점의 실험작입니다.
그림을 수정하고 다시 인쇄하며 ‘단계별로 변화하는 이미지’를 관찰할 수 있는 리튬판화의 특성이, 피카소의 실험 정신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피카소는 평생 ‘형태’와 ‘본질’ 사이의 관계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황소라는 익숙한 동물의 형상을 통해, “형태를 얼마나 단순화할 수 있는가?”, “단순화해도 그 정체성이 유지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황소를 점점 단순화해가며, 본질이 유지되는 한 어디까지 생략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게 된 것이죠.
이는 '입체주의(Cubism)'나 초기 아방가르드 시절 피카소의 창작 경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황소는 스페인 문화에서 힘과 야성,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피카소는 이미 그의 대표작인 1937년의 '<게르니카>'에서도 황소를 등장시켜, 전쟁의 참혹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바 있죠.
황소 연작은 <게르니카>만큼 정치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전후 시대의 불안함 속에서 강한 상징적 이미지를 단순화하는 과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단순해질수록 본질은 선명해진다."
피카소의 ‘황소(Bull)’ 연작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놀라운 예술 실험입니다. 이 연작은 하나의 황소 그림을 점차 단순화해가는 11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처음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황소가, 점차 선 몇 개로 이루어진 형태로 축소되며, 결국엔 ‘황소의 개념’만 남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철학자처럼 묻고 답하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황소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어야 황소로 보이는가?”
“얼마나 덜어내야 진짜가 보이는가?”
단순화는 왜 중요한가?
이 연작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미술사적인 실험에 그치지 않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강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소비하고, 복잡한 감정과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때로는 덜어낼수록 더 깊이 본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황소는 말합니다.
"본질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기 위해선, 덜어내야 한다."
애플의 사내 교육에 활용되는 피카소의 '황소' 연작
피카소의 황소가 전하는 이 메시지는,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줄곧 강조한 철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Simple can be harder than complex. You have to work hard to get your thinking clean to make it simple.”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렵다. 생각을 맑게 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애플은 피카소의 황소 연작을 사내 교육 자료로 실제 활용했으며, 디자인 철학과 제품 개발 원칙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에 이 그림이 등장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화는 제거가 아니라, 본질만을 남기는 과정이다.”
이는 애플의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들에게 제품 기획 단계에서 ‘본질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도록 유도하는 철학적 도구로 작용했으며, 그 철학을 토대로 애플의 제품들이 디자인 되었습니다.
예술, 그리고 삶에 던지는 질문
피카소의 황소 연작은 결국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 삶의 황소는 무엇인가?
본질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복잡한 요소는 무엇인가?
지금 덜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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